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격리된 장병들의 부실 급식 제보가 군의 식자재·피복 조달 시스템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을지 주목된다.
국방부는 3일 8개 범부처 공무원과 조리병,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한 '장병 생활여건 개선 TF'에서 식자재·피복 조달 시스템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식자재의 농·수·축협 독점계약과 보훈단체 중심의 피복류 조달 체계를 바꾸자는 취지로 관측된다.
군이 범부처 공무원들이 참여한 협의체에서 식자재와 피복류 조달 방식 개선을 꺼낸 것은 '더는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절박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부는 "연간단위 계약을 통해 장병들이 먹을 메뉴를 결정하는 기존 공급자 중심의 현 시스템을 장병들의 선호와 맛을 최우선 가치에 두고 '장병 선호메뉴에 따라 이에 필요한 식자재를 구매하는 시스템'으로 변화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군 급양 담당자들은 현재의 식자재 독점계약체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병 급식에 사용하는 농수축산물은 1970년 농협과 맺은 '군 급식 품목 계획생산 및 조달에 관한 협정'에 따라 수의계약 방식으로 조달한다. 작년 기준 급식예산의 약 54%가 수의계약으로 집행됐다.
수의계약은 국산 식자재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장병들의 선호도와 무관하게 식자재를 일괄 구매하는 문제가 있다. 기관에서 할당하는 식자재와 지역 특산물 위주로 공급하다 보니 장병 선호도와 무관하게 급식으로 제공된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다 국가가 쌀 소비와 우유제품, 파, 마늘 등의 소비를 권장하면 일차적으로 군에 무더기로 납품되는 것이 현실이다. 장병 1인당 연간 우유 435개씩 무조건 소비해야 한다는 지침이 대표적인 사례다.
병사들이 선호하지 않은 제품이 식자재로 무더기 반입되면 당연히 잔반으로 처리되는데 이 처리 비용도 연간 110억여 원에 달한다. 내년에 잔반 처리 비용이 140억여 원으로 인상되는데 이는 전체 급식비에서 충당한다.
군부대 식당을 '민간 외주화'하는 방안도 추진되는 데 찬반 논란이 제기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육군훈련소 1개 연대, 공군 기본군사훈련단, 육군 사단의 신병교육대 등을 민간위탁 시범 부대로 검토하기로 했다.
일부 예비역 단체는 전시에 급식 문제 등을 들어 외주화에 반대하고 있다.
국방부는 "전시에도 민간위탁 사업자가 적시에 지원해 줄 수 있는지, 이를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사전에 갖춰져야 하는지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했다"고 설명했다.
군에 보급되는 피복류의 질도 문제가 되고 있다. 현 장병 피복류는 보훈 등 특정 분야 단체를 중심으로 계약한다.
국방부가 지난 2012년 국회 국방위원회의 요구로 피복류 보급 실태를 감사했는데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당시 신형 전투복, 운동화, 베레모 등의 조달체계와 질감 등을 조사했더니 엉망이었다. 운동화는 병사들의 발 크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제작되어 납품됐다.
이에 국방부는 수의계약으로 납품됐던 사계절 운동복과 삼각·사각팬티, 겨울 내의, 방한 양말 등 17개 피복 물품을 경쟁계약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이번 TF에서는 셔츠, 내의, 양말, 운동복, 운동화 등 장병들이 항상 입는 피복류에 대해서는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장병들의 요구를 반영해 민간 상용품을 확대 보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국방부는 "민간수준의 품질이 좋은 제품이 보급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갈 것"이라며 "장병들에게 품질이 낮은 피복류가 보급되지 않도록 품질보증 활동을 강화하고, 이를 위한 품질보증 인력 확충과 전문성을 향상하는 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병영문화 개선 차원에서 고발앱 운용을 비롯해 훈련병의 휴대전화 사용, 카페형 군마트(PX) 설치 등도 눈길을 끈다.
국방부는 "군내 다양한 고충 제기 창구를 '모바일 앱' 기반으로 통합하고 고충 처리의 익명성과 신속성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최근 부실 급식 제보 창구가 된 민간 SNS(소셜네트워크)와 같은 '고발앱'을 만들어 군의 공식적인 고충 채널로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육군훈련소 등 신병교육기관에서 훈련병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최근 신병훈련소에서는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샤워와 세수, 양치 등을 제한해 문제가 된 바 있다. 현재 훈련병은 휴대전화를 부대에 반입해 사용할 수 없다.
과자, 라면, 음료수 등 물품을 구매만 하는 형태의 PX도 앉아서 대화할 수 있도록 의자 등 편의 시설을 갖춘 카페형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육군훈련소의 PX는 카페형으로 조성되어 있다.
박재민 국방부 차관은 "장병 생활여건 개선과 병영문화 혁신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threek@yna.co.kr